Ⅰ. 서문

「겪은 만큼 보이고 아픈 만큼 읽히는 책 동의수세보원 해설」(이하 ‘초판’)이 출간된 지 어느 덧 6년이 되었습니다. 어렵게만 느껴지는 동의수세보원을 알기 쉽게 해설하려고 노력했으나 시간이 흐른 뒤 다시 읽어보니 비전공자는 물론 전공자 역시 여전히 원문의 문장을 이해하는 것조차 어려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동의수세보원의 내용을 실제 환자를 보는 데 적용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필자는 인간의 마음에 따라 체질과 질병이 달라진다는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동양과 서양을 통틀어 의학사상 가장 독창적이며 가장 정확한 이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의 심리와 질병의 연관성에 대해 이보다 더 명쾌하게 분석한 책은 본 적이 없습니다.
본서 초판 발행 이후 어떻게 하면 동의수세보원을 더 깊이 이해하고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 놀랍게도 현대의 인체생리학에서 이제마의 서술과 비슷한 내용을 발견했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 인체는 스트레스의 정도와 스트레스 호르몬의 농도에 따라 혈관이 수축하거나 확장한다는 내용입니다.
특히 교감신경이 흥분할 때 분비되는 에피네프린은 낮은 농도에서는 혈관을 확장시키지만 높은 농도에서는 혈관을 수축시킵니다. 반대로 부교감신경의 아세틸콜린은 일반적으로 혈관을 확장시킵니다. 혈관이 확장되면 해당 장기에 혈액공급이 많아지고 혈관이 수축하면 해당 장기의 혈액공급이 줄어듭니다. 성장기에 꾸준히 혈액공급이 원활하면 해당 장기의 크기는 커지고 반대의 경우에는 작아집니다.
이것으로 이제마의 주장이 뜬구름 잡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현대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동의수세보원 사단론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의 성(性)이 멀고 넓게 퍼지면 기(氣)가 폐비간신(肺脾肝腎)으로 흘러 들어가 폐비간신이 성해져 폐비간신이 커지고, 희로애락의 정(情)이 촉급하면 기가 폐비간신을 빠르게 지나쳐 폐비간신을 깎아서 폐비간신이 작게 형성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요약 인용. 본서 초판 256쪽 참조.)

현대 생리학에 따르면 평온한 상태에서는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어 혈관이 확장됩니다. 또한 스트레스를 받아 교감신경이 활성화되었더라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혈관이 확장됩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관심을 갖고 있는 분야나 많이 쓰는 감각기관이 무엇인가에 따라 관련 장기로 가는 혈관의 직경이 달라져 혈류량에 변화가 생기고 그 결과 장기의 대소가 달라집니다. 이게 동의수세보원에 나오는 성(性)의 영역입니다.
반대로 스트레스가 극심하여 교감신경이 지나치게 흥분하고 부교감신경이 교감신경을 견제하지 못하면 에피네프린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분비가 급증하고 말초혈관이 강하게 수축합니다. 그 결과 해당 장기로의 혈액 공급이 줄어들어 그 장기의 기능이 급격히 나빠집니다. 이건 정(情)의 영역입니다.
성(性)과 정(情), 평소의 관심 분야와 스트레스의 종류와 정도에 따른 해당 혈관의 확장과 수축. 이 개념들만으로 사상체질과 질병의 많은 부분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필자가 사회에서 직접 겪었던 수많은 일들 덕분에 동의수세보원을 읽을 수 있었던 것처럼 아팠던 기억을 바탕으로 생리학 교과서를 다시 읽으니 책에 나오는 내용들이 머릿속에서 새롭게 구성되어 인간의 생리란 이런 것이구나 하는 그림이 그려지는 듯했습니다.
생리학 지식을 가지고 건강관리를 하다 보면 소화불량은 위의 문제 외에도 소장액의 pH가 낮아서 발생한다는 것, 위식도 역류성 질환은 식도괄약근의 힘하고는 아무 관련이 없다는 것, 당뇨에서 진정한 위험 요소는 포도당보다 케톤산이라는 것, 간경변 환자에게 가장 나쁜 음식은 농약을 친 농산물과 중금속에 오염된 해산물이라는 것, pH를 관리하면 신부전의 진행을 막아 투석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 등을 자연히 알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동의수세보원과 생리학 지식을 결합하면 간경변은 지나친 분노로 인해 간으로 가는 혈관이 수축한 결과 간의 혈액공급이 감소해서 간의 열을 식히지 못해 발생하는 문제라는 것, 다한증은 태음인이 내심 화가 많이 나지만 겁이 많아서 표출하지 못하는 성격과 관련이 있다는 것, 폐가 크다는 것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다는 것이며 이는 이 사람이 매우 예민하고 스트레스를 잘 받는 성격으로 태양인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 류머티스 관절염의 진짜 원인은 장기간 마음의 상처를 받아 삶의 의욕이 부족해서 발생한 체온저하라는 것 등을 유추할 수 있게 됩니다.
실전 동의수세보원 해설! 몸으로 배우는 스트레스 생리학(이하 ‘실전편’)에서는 스트레스에 대한 인체의 반응을 중심으로 동의수세보원을 재해석하고 그 관점에서 인간의 체질이 형성되는 과정 및 여러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이제마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과학적 한계로 인해 동의수세보원에서 충분히 설명되지 못한 부분은 현대 인체생리학의 연구결과로 보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스트레스 반응을 유발하는 사회적인 배경, 개인의 특성 등에 관한 이제마의 인문학적 고찰과 체질 분류는 동서양의 그 어떤 학문도 따라올 수 없는 독창적이고 독보적인 이론입니다.
필자는 이런 관점에서 인체 생리와 병리를 바라보면서 몇 번이나 ‘유레카!’를 외쳤는지 모릅니다. 많은 부분이 너무도 쉽게 풀려서 보건의료인이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복잡한 병리학 이론과 두꺼운 의학서적들이 사실은 우리가 건강의 본질에 다가가는 것을 막기 위해 의도적으로 설계된 장애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생깁니다.
과학이 발달하고 점점 더 작은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게 되면서 신체 증상과 질병의 원인이 심리적, 정서적 요인이라는 사실이 점차 무시되거나 의도적으로 배제되었습니다. 이는 근대 의학이 제도화되면서 생명을 관장하는 출산에 관한 지식이 풍부하면서 전통적인 약초 요법에 능숙한 산파들을 마녀사냥의 이름으로 희생시켰을 때부터 예정되었던 흐름일지도 모릅니다.
스트레스라는 용어를 의학 영역에 도입한 한스 셀리에는 인체의 생리적 반응이나 질병에 대한 부분적이고 세밀한 연구는 잘 되어 있으니 이제 우리 머리 속에 있는 조각난 지식들을 전인적 관점에서 통합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스트레스 생리학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지금까지 서로 관련성이 없어 보였던 이 모든 관찰들을 통합하는 공통된 기반을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셀리에의 말처럼 본서에서는 인체에서 발생하는 여러 현상들을 스트레스라는 이름으로 통합해 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생리학 전공자가 아니어서 불완전한 부분이 많으며 중요한 최신 연구가 반영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본서는 전문 지식을 전달하는 학술서라기보다는 인체 생리와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 혼자 공부한 내용을 정리한 것에 가깝습니다. 부족하거나 정확하지 않은 부분은 많은 독자 여러분께서 채워주시리라 믿으며 긴 여정을 시작해 보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