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스트레스 반응
이제 본격적으로 스트레스가 인체에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지 알아볼 때가 되었습니다.
신경내분비학의 관점에서 스트레스는 청반-노르에피네프린/교감신경계와 HPA축을 활성화하는 모든 자극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트레스 반응에는 전신의 생리 체계가 동원되지만 스트레스의 조절은 뇌의 일부, 자율신경계, 내분비계가 담당합니다. 뇌에서는 편도체-해마-전전두피질이 스트레스의 최상위 통제실 역할을 합니다.

여기에서는 스트레스에 반응하는 단계를 9단계로 나누었지만 이 단계는 반드시 순차적인 것은 아니며 동시적이거나 반복적일 수 있습니다.
① 경보 발령 : 편도체
변연계(limbic system)의 일부인 편도체(amygdala)는 불안, 공포, 공격성 등 감정이 개입된 기억 등을 관장하는 기관으로 가장 먼저 스트레스를 감지합니다. 인체의 감각기관이 받아들인 여러 가지 정보는 시상(thalamus)을 거쳐 편도체로 전달되고, 편도체는 들어온 감각정보 중에서 위험 요소가 있는지 알아보고 신속하게 시상하부로 그에 대응하라는 경보신호를 전달합니다. 이 경로는 이성적 판단보다 먼저 발동합니다.
② 전반적 중추신경계 각성 : 상행성망상활성계/청반
스트레스 상황이 인지되면 상행성망상활성계(Ascending Reticular Activating System, ARAS)가 활성화되어 전반적 중추신경 각성을 유도합니다. 전반적 중추신경 각성이란 뇌 전체가 깨어난다는 뜻입니다.
특히 ARAS 내 청반핵(Locus Coeruleus, LC)에서 시작되는 노르에피네프린 경로는 경계심과 주의력을 극대화하여 개체가 생존을 위한 투쟁-도피 행동에 즉각적으로 임할 수 있도록 뇌를 준비시킵니다. 또한 당면한 상황에 주의를 집중하고 우선적으로 정보를 처리하도록 돕습니다.
③ 긴급 명령 : 교감신경-부신체계
시상하부(hypothalamus)는 항상성 유지 중추로서 편도체와 해마에서 들어오는 신호를 통합해서 교감신경-부신체계(sympathoadrenal system)을 활성화합니다.
전신의 각 조직 및 기관에 분포되어 있는 교감신경을 따라 순식간에 자극이 전달되면 교감신경 말단에서 노르에피네프린이 분비되어 스트레스에 대한 여러가지 반응을 일으킵니다. 부신수질에서는 에피네프린(약 80%)과 노르에피네프린(약 20%)을 분비해서 혈액으로 방출합니다.
그 결과 피부·내장으로 가는 말초혈관이 수축하고 심장박동이 빨라져서 혈압이 상승합니다. 그와 함께 간·근육·지방조직에서 글리코겐·단백질·지방을 분해하여 포도당을 만들어냅니다. 근육이 긴장하고 동공은 확장되며 신경은 예민해지고 반응속도가 빨라집니다. 한 마디로 즉시 사용 가능한 피와 에너지를 확보하고 신경이 날카로와지는 것인데 이 반응들은 투쟁 또는 도피가 가능한 상태로 인체를 준비시키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④ 위험에 대한 판단 및 선별 : 해마
해마(hippocampus)는 편도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편도체와 거의 동시에 활동을 시작합니다. 해마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기억을 통해 사건의 전후사정(맥락)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이 위험은 과거에 겪었던 상황과 유사한가?’ 또는 ‘지금은 안전한 곳에 있는가?’를 판단해서 편도체의 반응에 대한 초기 필터 역할을 수행합니다.
⑤ 이성적 통제 : 전전두피질
SAM축을 통해 응급조치를 시행한 직후 전전두피질(prefrontal cortex, PFC)에서는 편도체에서 들어온 정보의 위험도를 객관적이고 이성적으로 평가하고 재해석해서 스트레스 반응의 강도와 전략을 조절합니다.
편도체가 본능적이고 감각적이며(특히 후각 의존적) 공격적이라면 전전두피질은 이성적이고 자기 통제적입니다. 스트레스에 효율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편도체와 전전두피질의 활동이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편도체가 손상되면 위험한 상황에서도 공포를 느끼지 않으며 거기서 빠져나오려는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위험 경보 기능이 마비되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심하거나 반복적인 스트레스를 경험하면 편도체가 더욱 활성화되어 스트레스에 대한 본능적이고 감정적인 반응이 격해지고 편도체를 견제해야 하는 전전두피질의 활동은 위축되어 이성적인 대처방안을 수립하는 것이 어려워집니다.
⑥ 지속적인 생리적 적응 :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축(HPA축)
시상하부-뇌하수체-부신피질축(Hypothalamic–Pituitary–Adrenal axis, HPA축)은 호르몬 분비를 통한 지속적인 스트레스 반응을 수행합니다. 이 과정의 각 경로는 호르몬을 통해 신호가 전달되기 때문에 교감신경을 통해 밀리초 단위의 빠른 속도로 전달되는 SAM축과 달리 완전히 작동하는 데 수 초에서 수 분이 걸립니다.
최종적으로 부신피질에서 코티솔 등의 스트레스 호르몬이 분비되어 꾸준한 에너지 공급량을 확보하고 면역을 억제하는 등의 장기적인 적응 반응을 조절합니다.
⑦ 대처 행동 : 도파민 경로/전전두피질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적 응급 반응이 작동한 후에 인체는 단순한 생리적 각성 상태를 넘어 구체적인 대처 행동(coping behavior)을 선택·실행하게 됩니다. 이 과정의 핵심에는 중뇌 도파민 경로와 전전두피질의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도파민은 흔히 ‘쾌감의 호르몬’으로 오해되지만 실제로는 보상 자체가 아니라 보상에 대한 기대, 동기 부여, 행동 선택의 우선순위를 신호하는 신경전달물질입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도파민 시스템은 ‘지금 어떤 행동이 가장 유리한가’를 계산하여 전전두피질의 의사결정 과정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 과정은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행동을 유도합니다. 스트레스 요인에 대한 행동 반응은 위험을 감소시키고 개인을 문제에서 벗어나게 하거나 건강한 식단과 규칙적인 운동과 같은 건강 증진 활동을 포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스트레스가 과도하거나 장기화될 경우 코티솔 과다 분비와 신경조절 체계의 불균형으로 인해 도파민 신호의 조절 능력이 붕괴됩니다. 이때 도파민은 단순히 감소하는 것이 아니라 전전두피질에서 과잉 또는 무질서하게 작용하여 고차 인지 기능을 오히려 저해합니다. 그 결과 전전두피질의 상향 통제가 약화되고 행동 조절은 보다 원시적인 하위 회로(습관 회로, 충동 반응 회로)에 의존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장기적인 목표나 결과를 고려한 판단이 어려워지고, 즉각적 보상이나 회피를 추구하는 부적응적 대처 행동이 나타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흡연, 음주, 과식, 고위험 행동, 충동적 의사결정 등은 단기적으로는 스트레스 완화를 제공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스트레스의 생리적·심리적 부담을 더욱 악화시킵니다.
⑧ 반응 종료 및 회복 : 전전두피질, 해마, 부교감신경
스트레스에 대한 대처 행동이 적절하면 스트레스 반응은 소멸됩니다.
스트레스 반응의 종료는 두 가지 주요 경로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첫째, 전전두피질에서 상황을 재평가하여 이성적으로 위협이 사라졌다고 판단하면 직접 시상하부에 HPA 축을 억제하는 신호를 보냅니다. 둘째, 코티솔의 농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증가하면 해마에 있는 수용체가 이를 감지하여 시상하부에 HPA축의 반응을 종료하라는 피드백을 보냅니다.
전전두피질과 해마의 신호는 부교감신경이 분포한 전신의 기관으로 전달됩니다. 부교감신경의 말단에서는 아세틸콜린이 분비되어 혈압을 내리고 말초혈관의 수축을 원래대로 되돌리고 그동안 중지되었던 소화, 생식, 면역 등의 활동을 재개해서 인체의 휴식과 복구를 돕습니다.
⑨ 만성화된 스트레스 반응 : 해마, 편도체, 전전두피질
대처 행동이 부적절하거나 자극이 지속되거나 반복되면 스트레스 반응이 강화됩니다.
스트레스가 만성화되면 해마의 신경세포가 손상됩니다. 그 결과 HPA 축의 피드백 기능이 약화되어 코티솔 수치가 떨어지지 않아 생리 체계가 계속 마모됩니다.
전전두피질은 원래 계획, 의사 결정, 충동 조절, 작업 기억 등 고차원적인 인지 기능을 담당하는데 만성 스트레스로 인해 전전두피질의 신경세포들이 위축되면 인지 능력 및 충동 조절 능력 저하됩니다.
해마와 전전두피질과 달리 편도체는 만성 스트레스 상황에서 오히려 신경세포의 새로운 가지를 뻗고 연결이 강화됩니다. 그 결과 편도체가 과활성화되어 위협적이지 않은 상황에서도 심한 불안과 두려움을 느껴서 사소한 자극에도 스트레스 반응이 쉽게 유발됩니다.
이러한 변화들은 우울증, 건망증, 집중력 저하, 충동적이고 위험한 의사 결정, 불안 장애, 공황 발작 등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런 증상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를 포함한 스트레스 관련 정신질환의 위험을 증가시킵니다.
정신질환만이 아니라 신체질환의 위험성도 증가시키는데 인간에게 발생하는 수 많은 질병들이 만성 스트레스와 관련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