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스트레스 이론
(1) 한스 셀리에의 연구
원래 공학 분야에서 사용되던 스트레스(stress)라는 용어를 생리학 분야에 도입하고 이론을 정립한 사람은 헝가리계 캐나다 의사 한스 셀리에(Hans Selye, 1907~1982)입니다.
그는 스트레스를 ‘신체가 받는 모든 요구에 대한 비특이적 반응’으로 정의하고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신체에 일어나는 3가지 중요한 변화를 특정했습니다. 또한 스트레스가 지속될 때 그에 대한 인체의 반응은 3단계로 진행된다는 이론을 세웠습니다.
① 아프다는 것은 무엇인가?
1925년 셀리에는 프라하 의대에 재학중이었습니다. 그가 막 이론 수업을 마치고 처음으로 내과 수업을 들었던 날, 여러 감염병 초기의 환자들이 강의실에 들어왔고 교수는 그들에게 세심하게 질문하고 진찰을 했습니다.
그들은 모두 아파 보였고, 혀에 백태가 있었으며, 발열, 광범위한 관절통과 근육통, 비장 비대, 식욕부진을 동반한 장 질환, 체중감소 등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교수는 그 어떤 것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감염 초기였기 때문에 질병 진단에 도움이 되는 특징적인 징후들이 아직 나타나지 않았는데 교수는 그때까지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다고 말했습니다. 그 징후들이 없으면 정확한 진단과 치료가 불가능했습니다. 앞에서 나타난 증상들은 전부 ‘비특이적’이어서 의사에게는 진단적으로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입니다. 비특이적(nonspecific)이라는 말은 의학에서 특징적이지 않다는 뜻으로 특정 질환을 가리킬 수 없는 반응을 가리킬 때 많이 쓰입니다.
그는 의사들이 왜 훨씬 더 명백한 ‘그저 아픈 증후군(syndrome of just being sick)’에는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개별 질병의 진단과 치료법을 발견하는 데 모든 노력을 집중하려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의 생각에는 모든 개별 질병에 중첩되어 나타나는 이 ‘질병의 일반적인 증후군(general syndrome of sickness)’을 치료하는 방법을 배우는 게 훨씬 더 중요했습니다!!
그 후 그는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각 질병의 세부 증상을 배우는 데 몰두하느라 ‘아프다는 것은 무엇인가?(What is disease itself?)’라는 의문을 잊어버렸습니다. 10년 후, 의대 졸업 이후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생화학 교실 조교로 일하면서 성호르몬에 관한 실험을 하던 중 그는 의대생 시절 가졌던 생각과 다시 만났습니다.
셀리에는 소의 난소 추출물을 쥐에게 주사했을 때 부신 비대, 흉선과 림프절 위축, 위장관 궤양 등의 증상들이 나타나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이 증상들이 소의 난소 추출물 때문에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조직의 추출물이나 독성 물질을 주사했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추위, 열, 수술, 과도한 근육 운동 등의 물리적인 자극을 가했을 때도 같은 증상들이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이 일련의 증상들을 증후군이라고 보았으며 이 증후군은 손상을 유발한 특정한 요인과는 무관하고 오히려 손상 그 자체에 의한 반응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또한 그는 이 증후군의 목적은 유기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예를 들어 추위에 노출되면 인체는 근육을 수축시켜 열을 내고, 피부혈관을 닫아서 열 소실을 줄이며, 에너지를 많이 생성해서 체온을 올립니다. 이런 일련의 신체 반응을 ‘적응 반응’이라고 본 것입니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에 실패하면 적응 질환이 발생합니다.
그와 함께 셀리에는 이 손상 증후군에 대한 비특이적인 치료법에도 관심을 가졌습니다. 만일 이 증후군이 모든 질병 및 치료법과 관련이 있다면 이 증후군의 생리기전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는 손상 그 자체의 치료에 대한 과학적인 근거를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많은 질병들은 실제로 외부 요인의 직접적인 결과라기보다는 신체가 그에 대해 적절한 적응 반응을 보이지 못했을 때 발생합니다.
전통적인 치료법들은 비특이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몸이 아프면 편히 쉬고, 부드러운 음식을 먹고, 찬바람을 피하는 것이 좋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일반적인 방법들입니다.
온건한 민간요법과 달리 1900년대 중반까지 의대에서 가르치던 과격한 비특이적인 치료법도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전통적으로 사혈, 채찍질, 찬물에 담그기, 열병 치료, 신체에 이물질 주입, 전기충격 또는 인슐린 충격 등을 사용했는데 전기충격은 지금도 우울증 및 조현병 등의 심각한 정신질환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방법들은 실제로 효과가 있었습니다. 신체에 이물질을 주입하는 행위는 종종 류머티즘 의 호전을 가져왔고, 장티푸스에 감염된 정신질환자들은 정신 증상이 사라졌습니다. 열병은 정신질환만이 아니라 매독, 피부질환, 천식, 경련, 간질 등에도 효과가 있었습니다.
셀리에에 따르면 이 치료법들에는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인위적으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고장 난 기계를 한 대 치면 다시 작동하는 것처럼 정체되어 있던 생리 체계에 충격을 주어서 인체의 능동적인 방어 기전을 자극하는 것입니다. 자극을 받은 방어 기전은 때로는 질병을 극복할 정도까지 강화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구체적인 원리를 알지 못하면 이 모든 효과는 우연에 불과하며 매우 위험합니다. 인체의 스트레스 기전에 대한 과학적인 탐구가 진행되면 이러한 방법들이 어떤 경로를 통해 작용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고 신뢰할 수 있는 치료법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수들과 동료들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셀리에는 전통적인 내분비 연구로 돌아가는 대신 이 분야의 연구에 매진하기로 결심했고, 1936년에 그간의 연구 성과를 모아 다양한 유해 물질에 의해 생성되는 증후군(A Syndrome produced by Diverse Nocuous Agents)이라는 제목의 짧은 논문을 발표했는데 2025년 현재 8300 여회 인용되었습니다. 이 이론은 이후 수십 년간의 연구를 통해 보완되었으며 셀리에는 후에 이 증후군을 ‘스트레스 반응’이라고 불렀습니다.
② 일반 적응 증후군
위 논문에서 셀리에는 이 증후군을 ‘일반 적응 증후군(general adaptation syndrome, GAS)’이라고 불렀습니다. 그 이유는 이 반응들이 신체의 넓은 부위에 ‘일반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 의해서만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적응’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이 반응들이 방어 체계를 자극하여 환경에 대한 적응을 획득하고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증후군’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개별적인 증상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심지어 부분적으로는 서로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삶은 우리가 존재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과정’이며 바다에서 생명이 시작된 이래 생명체는 끊임 없이 진화해 왔는데 이는 변화하는 지구 환경에 성공적으로 적응했음을 의미하고, 적응에 실패하면 질병과 불행이라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A.R. alarm reaction. 경보반응
S.R. stage of resistance. 저항단계
S.E. stage of exhaustion. 소진단계

한스 셀리에의 모델과 비교할 때 스트레에 대한 저항이 점점 커지다가 줄어들면서 소진되는 것을 표현하고 있음.
일반 적응 증후군은 3단계로 진행됩니다.
첫 번째 단계는 손상 후 6~48시간 이내입니다. 손상 직후에는 일시적인 쇼크(shock) 반응으로 저항력이 급격히 떨어집니다. 심박수와 혈압이 내려가고 체온이 떨어지고 근긴장도가 저하되어 무기력합니다.
짧은 쇼크 반응이 지나고 나면 본격적인 스트레스 반응의 첫 단계인 항쇼크(counter-shock) 반응이 진행됩니다. 이때 부신 비대, 흉선과 림프절 위축, 위와 소장 점막의 궤양, 호산구 감소 등이 나타납니다.
부신 비대는 코티솔 분비 증가가 주요 원인이고, 흉선과 림프절의 위축 및 호산구 감소는 코티솔에 의한 면역계 억제의 결과입니다. 위장관의 궤양은 스트레스 동안 위장관 혈류 감소 및 중탄산염 분비 저하로 점막층이 파괴되어 나타납니다.
셀리에는 이 단계에서 신체의 다른 기관들은 모두 퇴행성 변화를 보이지만 부신피질만은 오히려 활성화된다는 사실에 주목했습니다. 그는 코티솔이 신체 방어군에 총동원령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고 보고 이 시기를 ‘경보 반응(alarm reaction)’이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경보 반응은 유기체가 자극을 인지하고 방어를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투쟁 또는 도피 반응이 시작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저항 단계(stage of resistance)입니다. 저항 단계는 손상 후 48시간부터 시작되며 이 기간 동안 자극에 대한 내성이 생기고 적응이 최적화됩니다. 역쇼크기의 일부 증상이 사라져서 건강이 회복된 것처럼 보이지만 내부적인 반응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지속적인 저항 반응은 부신피질 호르몬의 만성 과분비를 초래하고 이로 인해 전신의 생리 체계에 문제가 생깁니다.
세 번째는 소진 단계(stage of exhaustion)입니다. 소진 단계는 손상 후 1~3개월 후의 기간을 말하며 저항기에 획득한 적응 능력을 다시 잃어버리는 시기입니다. 손상의 정도가 약할 때는 치료를 통해 동물의 저항력이 증가하여 장기의 모양과 기능이 거의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지만, 손상이 심각한 경우 동물은 저항력을 잃고 1단계와 유사한 증상으로 쓰러져서 질병이나 죽음에 이릅니다.
소진은 신체의 자원이 고갈되고 내부 기관이 마모되는 것을 말합니다. 외부 자극에 성공적으로 적응해서 ‘거의’ 이전 상태를 회복한다고 하더라도 이로 인한 심리적·신체적 피로는 누적됩니다. 정상적인 노화 또는 외부 자극으로 인한 가속된 노화를 통해 전체 유기체가 소진되면 일반 적응 증후군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갑니다.
셀리에는 진정한 생리적 노화는 출생 이후 경과된 시간이 아니라 신체가 노출된 총 마모량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내용은 동적 항상성 개념을 주창한 학자들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일반 적응 증후군에 대한 비판도 많습니다. 그의 동물 실험 설계가 단순하고 극단적인 면이 있었고 주로 물리화학적 손상에 의한 것이었기 때문에 자극의 종류에 따른 차이, 개인의 특성에 따른 차이 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는 지적을 받습니다. 또한 동물 실험에서 하는 것처럼 복부를 절개해서 내부 상태를 확인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증상들을 측정 지표로 활용하는 데도 어려움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