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 월터 B. 캐넌의 연구
㉠ X선을 이용한 소화관 움직임 관찰 연구
1895년 말에 뢴트겐이 X선을 발견하자마자 이 혁신적인 기술은 과학계에 빠르게 전파되었고 바로 초기 형태의 형광투시경이 발명되어 의학 연구에 활용되었습니다.
캐넌도 이 신기술에 관심을 갖고 1896년 가을에 비스무트 화합물을 동물에게 먹인 후 X선을 이용해서 소화관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 후 그는 독성이 있는 비스무트 화합물 대신 더 안전하고 선명한 영상을 얻을 수 있는 황산바륨으로 조영제를 바꾸고 동물실험을 이어갔습니다.

그는 고양이에게 바륨을 먹인 후 자극을 주고 형광투시경으로 관찰했는데, 고양이에게 개를 만나게 하거나 다른 고양이와 적대적인 만남을 갖게 하여 공포나 분노 반응을 유도하면 위장의 연동운동이 갑자기 멈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후 고양이가 안정을 찾으면 위장의 연동운동이 재개되는 것을 반복적으로 관찰하여 정서적 흥분과 소화 기능 중단 사이에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또한 심장으로 가는 신경을 절단한 개에게 위협적인 자극을 주었을 때 심박수가 증가하는 것을 확인했는데 이 실험은 교감신경과 별도로 부신수질에서 분비된 아드레날린만으로도 심장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노르아드레날린의 존재가 발견되지 않아서 캐넌은 교감신경 말단에서도 아드레날린과 유사한 물질이 분비된다고 추정했고, 교감신경과 부신이 통합적으로 기능한다고 보았습니다.
㉡ 투쟁 또는 도피 반응
1915년 캐넌은 고통, 배고픔, 두려움, 분노의 신체적 변화(Bodily Changes in Pain, Hunger, Fear and Rage)라는 저서를 발간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공포, 분노, 고통, 굶주림’이라는 네 가지 대표적 감정 상태를 분석 대상으로 삼고, 각 감정이 교감신경계와 부신수질을 통해 신체의 내부 환경을 유지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이 논문에서 그는 스트레스 상황에서 신체가 보이는 반응을 설명하기 위해 ‘투쟁 또는 도피 반응(fight-or-escape response)’이라는 용어를 처음 제시했습니다. escape는 후에 flight라는 단어로 대체되었습니다.
그는 처음에는 투쟁 또는 도피 반응이 교감신경과 부신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에 의한 단일화된 반응이라고 이해했지만 나중에는 교감-부교감의 길항 작용을 포함한 신경계 및 내분비계의 협응에 의한 조절임을 확실히 했습니다.
후에 정리된 내용에 의하면 자율신경계는 항상성에 가장 직접적으로 기여하는 신경회로망으로 상반된 작용을 하는 두 개의 분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교감신경 분과는 투쟁 또는 도피 반응에 필요한 격렬한 에너지 발산을 위해 인체의 에너지를 총동원하고 소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부교감신경 분과는 소화를 촉진하고 동화작용을 주도하는 등 에너지를 보존하고 축적하는 기능을 담당합니다.

후대 학자들은 교감신경의 투쟁 또는 도피 반응에 대응하는 부교감신경의 역할을 ‘휴식과 소화(rest-and-digest response)’라고 정리했습니다.
캐넌은 투쟁과 도피를 구별하지 않았는데 이 두 가지는 선택한 행동은 다르지만 몸의 반응은 같다고 보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신체적 위기와 감정적 위기도 명확하게 구분하지 않았는데 그는 이 두 위기에 대한 반응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생리적 기전에 의해 일어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후대 학자들의 연구에서 투쟁과 도피 시의 신체 반응의 세부 양상에 차이가 있음이 보고되었고 그 외에도 얼음(경직), 공포, 아첨, 실신 등 다양한 반응이 있음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행복, 사랑, 두려움, 놀람, 분노, 부끄러움 등 다양한 감정에 따른 신체 반응이 서로 다르다는 연구들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희로애락에 따라 생리 현상이 달라지고 그에 따라 신체의 외형과 질병의 발생 양상마저 달라진다는 것은 동의수세보원의 핵심적인 원리이기도 합니다.
㉢ 교감신경-부신계
캐넌은 살아있는 고양이와 개를 실험동물로 사용해서 고통·기아·출혈 같은 신체적 위협과 공포·분노·놀람과 같은 정서적 흥분이 동물의 신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했습니다.
그와 함께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군의관으로서 외상성 쇼크를 겪는 군인들을 관찰하면서 외상성 쇼크를 받은 사람들의 혈액이 산성이라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산을 중화하기 위해 탄산수소나트륨을 주입하여 쇼크를 입은 부상자를 치료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그는 세계 곳곳의 원주민 부족에서 주술사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이 강한 공포로 인해 죽는 현상을 관찰하고 ‘부두 사망(voodoo death)’이라고 명명하기도 했습니다.
강렬한 신체적 위협과 정서적 흥분 모두 교감신경계와 부신수질을 활성화시켜 노르에피네프린과 에피네프린을 분비하게 하고 그 결과 심박수 증가, 혈압 상승, 호흡 촉진, 근육으로의 혈류량 증가, 혈당 상승, 소화 억제, 혈액 응고 촉진 같은 변화를 일으킵니다.
캐넌은 이러한 반응을 조절하는 체계를 교감신경-부신계(sympathico-adrenal system)라고 불렀습니다. 교감신경-부신계의 목적은 출혈에 대비하여 순환혈액량을 확보하고 에너지와 산소 공급을 극대화하여 외부의 위협적인 반응에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신경계와 내분비계의 역할은 서로 보완적인데 신경계는 매우 빠르고 특정 기관에 작용하여 즉각적인 효과를 나타내고, 내분비계는 느리고 지속적이며 더 넓은 범위의 조정을 수행합니다. 특히 호르몬은 혈류를 통해 신경섬유가 닿지 않는 곳까지 도달해서 전신적인 협응을 가능하게 합니다. 캐넌은 부신, 갑상선, 췌장 등을 항상성을 조절하는 주요 내분비선으로 제시했습니다.
캐넌은 위기 상황에서 교감신경-부신계가 활성화되는 현상을 단순한 흥분이나 반사작용이라고 보지 않았고, 오히려 이를 내부 환경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한 체계적인 조절 반응으로 해석했습니다. 비록 그 조절의 결과가 단기적으로는 내부의 평온함을 희생시킨다고 하더라도 외부의 위협을 효과적으로 제거하거나 그로부터 벗어나면 다시 장기적으로 안정성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캐넌은 투쟁 또는 도피 반응의 조절 중추는 시상하부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있었고 교감신경과 부신수질이 그 실행기관이라고 보았습니다.
㉣ 항상성 용어 등장
1929년 캐넌은 30여 년간의 자율신경계 연구를 종합하여 ‘생리적 항상성을 위한 구조(Organization for Physiological Homeostasis)’라는 논문을 발표했습니다.
그는 고대 히포크라테스의 자연치유력 개념부터 현대의 자기 조절 개념까지 인용하면서 생명체는 스스로 안정성을 유지하는 존재라는 전제를 세웁니다. 그는 베르나르의 ‘일정한 내부 환경’ 개념을 계승하여 생명체가 외부 변화 속에서도 내부의 유체 환경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능력을 생명 현상의 핵심으로 보고 항상성(homeostasis)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고 밝혔습니다. 여기서 homeo-는 ‘비슷한’이라는 뜻이고 stasis는 ‘정지하고 있는, 동일하게 유지되는’이라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항상성이라는 말을 고정되어 변하지 않는 어떤 상태로 이해하기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캐넌은 ‘똑같다’는 뜻의 homo- 대신 ‘비슷하다’는 뜻의 homeo-를 쓴 이유에 대해 내부 환경이 정확히 고정된 어떤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일정한 범위 내에서 유지되는 역동적인 상태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항상성을 유지해야 하는 항목에 대해 삼투압, 온도, 수소이온농도를 중요하게 보았고 그 외 세포에 필요한 물질로 포도당·단백질·지방, 수분, 염화나트륨을 비롯한 무기성분, 칼슘, 산소, 내부 분비물을 들었습니다.
㉤ 몸의 지혜
캐넌은 베르나르와 같이 세포들이 살아가고 있는 체액의 성질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항상성 조절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또한 생물학적 항상성은 시상하부와 자율신경계(교감신경)과 내분비계(부신)의 협력으로 지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조절이며, 신체의 모든 기관들의 끊임 없는 피드백을 통한 역동적인 과정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음성 피드백(negative feedback)이라는 용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상기전(compensation) 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서술한 보상 기전은 다음과 같습니다.
– 위급한 순간이나 심각한 출혈이 생기면 교감신경-부신 체계가 작동해서 아드레날린이 방출되어 심장의 박동을 강화하고 혈관을 수축시킨다.
– 혈당이 정상 이하로 떨어지면 부신이 활성화되고 회복되면 분비가 중지된다,
– 과열되면 체온이 정상으로 돌아올 때까지 발한과 혈관 확장이 지속된다,
– 체액이 산성화되면 호흡이 증가하고 중성이 회복되면 호흡은 원래 리듬으로 돌아온다.
– 신장은 산을 소변으로 선택적으로 배출하거나 여과된 중탄산염을 최대한 재흡수해서 체액의 pH를 조절한다.
그 외에도 수분·염분·단백질·지질·칼슘 등의 저장–동원–배출의 원리에 대해 설명했는데 이 구절들은 모두 ‘자극 → 조절 → 회복 → 정상 상태’의 순환 구조를 암시합니다.
캐넌은 항상성을 단순히 ‘정상 상태’를 유지하는 것으로만 보지 않았고 오히려 외부 자극에 반응하여 신체를 통합적으로 조절해서 원래 상태로 회복하는 능동적인 과정을 항상성의 본질이라고 보았습니다.
캐넌은 1932년에 일반 독자들이나 다른 분야의 과학자들에게 항상성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몸의 지혜'(The Wisdom of The Body)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서 그는 항상성 개념은 흩어져 있던 생리학적 조절 현상을 하나의 일반 원리로 통합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개별 장기에 관한 세부 연구는 이미 성숙했으니 이제 기관간 상호작용과 기능의 조절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것을 촉구했습니다.
다시 말해 항상성은 뇌와 신경, 심장, 폐, 신장 등 광범위한 기관의 통합된 협력에 의해 조절되는 것이므로 특정 질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전체적인 조절 체계가 어떻게 균형을 잃고 실패했는지를 해석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입니다.
이 제안은 90여 년이 지난 오늘에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인체 생리를 미시적으로 들여다볼수록 오히려 점점 질병의 원인에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마치 지도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전체의 모습을 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인체 생리에 대한 통합적인 시각을 갖추지 못하면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방식의 치료를 시행하고도 문제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또한 질병의 원인을 본태성이라고 규정하거나 유전자나 특정 생화학적 물질의 탓으로 돌리는 것은 결국 우리 몸의 통합적인 조절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다한증 치료에서 과도한 발한을 줄이기 위해 교감신경 절제술을 시행하면 해당 부위의 발한은 줄어들지만 몸의 다른 부위에서 보상성 발한이 증가합니다. 땀의 분비는 체온 조절이 목적인데 한 부위의 발한을 억제해서 체온이 충분히 낮아지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부위로 항상성 조절의 부담이 옮겨가는 것입니다.
다한증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땀을 줄일 것인가 이전에 왜 땀이 많이 나는가, 왜 체내 열 발생이 많은가와 같은 근본적인 원인에 대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